순국선열이 잠들어 계시는 현충원은 참배객으로 생기 넘치는 주말과 달리 주중에는 푸른 하늘 아래 고요하다. 뜨거운 햇살이 드리워 경내가 달아오를라 치면 바람이 살짝 묘비를 만지고 지나가는 눈부시게 맑은 날, 고요한 현충원을 깨워 고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한 사람을 만났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8년 째 묘역 정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하태훈 씨가 그 주인공.

늘 해오던 당연한 일이 주목받는 것이 어색하다며 연신 말을 아끼던 그는 뜻밖에 아버지 이야기를 담담히 꺼냈다. 황해도 출신의 아버지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모두 참전하셨고, 베트남전 참전 시 상처를 입고 전역한 후 약 40여 년간 투병 생활을 힘겹게 견디시다 지난 2015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필시 온 가족의 고통이었을 터다.

“아버지는 국가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셨어요. 그 때문에 평생 힘들게 사셨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견디셨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당신 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이렇게 오래 가족 곁에 머물러 주셔서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사드릴 일이지요. 그 마음이 지금 저를 현충원으로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에 터를 잡은 바람에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신 아버지를 자주 뵐 수는 없지만, 대전현충원에 아버지의 전우, 친구분들이 안장돼 있어 봉사활동을 하는 자체에 남다른 감회가 있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뵙는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더 자주 들르게 됐다.

“저는 제가 하는 원자력 관련 일과 현충원 가꾸기 활동은 같은 애국심의 근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많은 갈등 속에 살고 있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면서 작게나마 국가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충원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유족과 말을 섞으며 서로의 보훈의식을 확인하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즐거워요.”

현재 그가 몸담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대전현충원과 1사1묘역 가꾸기 협약을 맺고 기술연구소 직원 거의 전부가 현충원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3~40명 정도의 적은 인원이지만 애국지사 묘역 2개와 천안함 묘역 정화 활동을 맡고 있는데 직원들 사이에서도 현충원 봉사활동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전한다.

 

 

늘 앉아만 있던 사무실에서 벗어난 직원들이 현충원 봉사활동을 통해 활력을 찾고 ‘나라사랑'의 의미를 새겨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과 책임감이 온몸에 느껴진다는 그다. 이 일을 통해 젊은 직원들과 대화가 많아져 친근하고 유연한 상사로 인기가 많아진 것은 덤이다.

그가 이렇게 현충원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 번의 참전으로 가장인 아버지가 길고 긴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가족이 생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때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이끌어줬던 것이 바로 국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하릴없이 누워계실 때 우리 가족은 국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 삼 형제를 국가가 키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장학금으로 공부도 잘 마쳤고요. 덕분에 사회에서 각자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제 받은 만큼 제가 돌려줘야 할 때 아니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가치 있는 많은 일이 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묘역을 관리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소명의식’까지 느낀다는 그다. 앞으로도 현충원 정화 활동뿐만 아니라 더 깊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 중이다.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묘역마다 생화를 놓고 태극기를 꽂아두는 일은 진작부터 진행 중이고, 분기별로 직원들을 모아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학습하는 간담회도 개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현충원이라는 공간에 관심을 두고 공원처럼 찾아 친근하게 만드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누구나 와서 참배하고 그 정신을 기릴 수 있게 애국의 장이 되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 이 현충원과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잖아요.”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주변의 작은 쓰레기 하나 놓치지 않던 그의 마음은 그대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 나라사랑의 눈부신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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