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1913년 선린상업학교 재학 중 천도교에 입교했으며 1917년 권병덕 선생의 소개로 천도교주인 손병희 선생의 딸 손용화와 결혼했다.

선생은 1908년 소년 입지회를 통해 최초로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1918년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해 청소년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청년회 회원으로 만세운동 준비에 협력하고 ‘개벽사’를 설립해 월간지 ‘개벽’을 발간하며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선생은 동료 오일철과 함께 자택에서 ‘독립신문’을 등사해 배포하다 일경에 체포돼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석방된 후에도 비밀장소에서 계속해서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선생은 1920년 ‘어린이 노래(개벽3, 1920)’를 번역해 소개하면서 ‘늙은이’, ‘젊은이’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어린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21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천도교 청년회 동경지회를 조직했으나 1921년 11월 10일 태평양회의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혐의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1923년 소년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잡지 ‘어린이’의 창간과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소년 계몽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민족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선생은 1931년 7월 무리한 활동에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만 31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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