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어린잎이 가득한 이맘때 쯤이면 누구나 초록을 바라보며 여행을 꿈꾼다. 우리는 어느 푸른 바다 백사장에, 울창한 숲속에, 오래된 골목길 한켠에 내 한 몸 놓고 싶다는 달콤한 상상으로 지친 일상을 버틴다.

낯섦은 새로운 에너지다. 삶의 원동력이다. 낯선 길에서 만난 낯선 상황, 낯선 사람이 전해준 설렘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하지만 일상의 책임을 던져두고 훌쩍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책의 위로가 있다. 책은 떠날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우리를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곳에 데려다 놓고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여행의 품격: 땅의 역사(박종인 저, 상상출판 발행)

 

이 땅을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더 풍부한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 책을 만들었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는다. 우리는 땅에 산다. 그 땅에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모든 사람이 사학자일 필요는 없지만,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여행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

‘여행의 품격’은 운염도의 갯벌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찍고, 서산 갈대밭에서 철새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땅의 역사’라는 콘셉트가 자칫 무거운 역사지식 전달에 치우쳐 인문기행이 주는 재미를 놓칠 것을 우려해 현장감을 살리고 그곳에서 수십 년 살아온 사람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아 진솔한 여행 이야기를 찾아내고 더했다.

이 책은 감각적인 여행지보다는 우리 국토의 의미 있는 곳을 찾아 땅의 맥박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나라는 하찮은 돌 한 덩이에도 역사의 숨결이 묻어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유명하고 화려한 여행지 대신에 곱씹을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곰삭은 땅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림으로 떠나는 무진기행(김승옥 저, 아르떼 발행)

 

‘무진기행’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남긴 작가 김승옥은 2003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으로 말을 빼앗겼다. 다행히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일상적인 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나 단어 위주의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선과 색으로 자신에 눈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을 수채화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무진기행’의 무대가 되는 순천을 비롯해 광양의 매화마을, 부산 해운대, 목표 유달산, 중국 용정시 윤동주 생가까지, 눈에 비친 인상 깊은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산은 푸르름이 물들었고 매화나무와 벚나무 가지는 꽃으로 무성하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고통과 불안, 절망이라는 어둠 대신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생동감으로 빛난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전원 풍경 속을 거닐면서 각박하고 날카로운 도시 풍경이 주는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림으로 떠나는 무진기행’에는 풍경화를 비롯해 윤동주, 유치환, 박목월, 전봉건, 박재삼, 김춘수 등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대표 작가들의 생가와 동상, 시비 등을 그린 그림이 함께 실었다. 또한 그림과 더불어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 등을 함께 기술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맛의 천재: 이탈리아, 맛의 역사를 쓰다(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저, 책세상 발행)

 

‘맛의 천재’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음식들의 탄생 비화와 성공 비결을 들려주는데, 과거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생생하게 소환하기 위해 문학, 미술, 영화, 광고 등 온갖 장르의 문화 콘텐츠가 동원된다.

또한 수많은 역사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영화처럼 쉼 없이 펼쳐지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통보리로 만든 접시로 등장한 납작한 빵이 ‘피자헛’으로 전 세계 동네 구석구석을 파고들기까지의 피자의 변천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간으로 진화한 것만큼 놀라운 변신 이야기다.

마카로니와 파스타를 다루는 장에서는 18세기 요리서적에서 3시간이었던 면 삶는 시간이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1시간 30분이 되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 20분으로 줄어드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밖에도 덩어리 모양으로 판매되던 헤이즐넛 초콜릿이 무더위에 녹아버리자 빵에 발라 먹는 크림 누텔라로 변신하는 이야기들은 기업인들의 창의력과 용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맛의 천재’를 어떻게 읽을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미식가들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이탈리아 음식의 레시피 변천사에서 새로운 레시피를 떠올릴지도 모르고, 역사에 관심 많은 인문학도라면 여러 지역의 다양한 식문화가 정치, 종교의 역학 관계와 얽혀서 발전 혹은 쇠퇴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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