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정 선생은 대구에서 재력을 갖춘 경주 이씨 가문에서 출생해 일찍 부친을 여의고 조부 슬하에서 성장했다.

선생은 1909년 초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죠 중학교에서 수학하고 1917년 이후 대구 계성학교와 정주 오산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20년대 초반 평안도 등에서 교사로 재임하며 사회운동을 전개 했다.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중국 하북성 등지에서 풍옥상 군 참모부의 막료로 근무했으며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최초의 여류 비행사인 권기옥을 만나 결혼했다. 1927년 권기옥이 상해 동로항공사령부의 비행원이 되자 상해로 이주해 선생은 항공사령부 특별문관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과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되며 임시정부에 본격 참여했다.

1941년 육군참모학교 내 유격대훈련학교의 소장교수로 재직하며 적극 활동했다.1945년 2월 선생은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개혁과 독립운동자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하며, 독립운동 노선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민족전선 통일운동의 관점에서 광복 이후 정치적 지향을 권력투쟁보다 대중을 우선하는 것에 주력했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군에서 활동하며 한중연대의 강화와 중국지역의 한인 귀환에 힘쓰다 1947년 어머니의 사망소식에 귀국한 그는 귀국 후 40여 일만에 뇌일혈로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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