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에서 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자매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체포위기에 처하자 김필순과 함께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선생은 남경에서 중국인 기독교인의 도움으로 기독회 의원 의사로 취직했으나 몽골에 비밀군관학교 설립 계획을 하고 있던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경 몽골 고륜(현재 울란바토르)으로 옮겨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원했다.

선생은 몽골에 근대적 의술을 도입해 몽골 국민에게 큰 신망을 얻었으며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보그드 칸의 어의가 되기도 했다. 선생은 당시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몽골 국가훈장을 받았다.

몽골에서 의술을 베풀며 두터운 신뢰를 쌓은 선생은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히 연락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 등 온갖 편의를 제공했으며,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는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군의관 감무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선생은 러시아 백위파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한·몽 친선의 상징인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에는 이태준선생 기념공원이 건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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