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웨이는 6·25전쟁 발발 6개월 후인 1950년 12월 미 제8군사령관에 부임했다. 당시 유엔군은 11월 25일 시작된 중국군의 제2차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한 상태로,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중국군의 제3차 공세로 평택에서 삼척을 잇는 선까지 또다시 후퇴한 이후 유엔군의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해 곧 한반도를 포기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오히려 이때 리지웨이는 후퇴를 허락하지 않는 빛나는 리더십을 발휘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1951년 1월 25일부터 작전개념을 수색정찰에서 지역 확보로 바꾸고 육·해·공군 등 다양한 병종이 거대한 팀워크를 이루며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선더볼트 작전을 전개했다. 그가 직접 전투현장을 지휘하며 솔선수범했던 이 작전에서 유엔군은 중국군 인해전술의 한계점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땅에 떨어졌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리지웨이의 독려와 지휘로 전장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꾼 유엔군은 38도선으로 다시 진격, 한강 남쪽을 확보했다.

맥아더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됐던 리지웨이는 1936년 7월 정전협상을 끌어내면서 전쟁을 명예롭게 끝낸 지휘자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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