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협 대령은 1948년 9월 항공병 2기생으로 입대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8일, 당시 이등상사였던 그는 미 군사고문단의 L-5 연락기 2대가 여의도기지에 방치돼 있다는 보고를 받고, 수원기지까지 연락기를 무사히 이동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전시에 아군기 한 대라도 더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적 대공포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뤄낸 결과였다.

그는 이때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아 1950년 9월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F-51 전투기조종사 전환교육을 받고 강릉 제10전투비행단에 배속돼,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한 1951년 8월 항공지원작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파괴작전 등에 편대원으로 참가했다.

승호리 철교 파괴 작전은 적 후방 보급로를 끊어내는 작전으로 저공비행의 극한 위험을 감수하며 임무를 완수해 내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3월, 송림 공업도시 폭격, 8월 평양 대폭격, 송림제철소 폭격작전 등 6·25전쟁사에서 빛나는 주요 전투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6·25전쟁 중 그칠 줄 모르는 사명감으로 F-51전투기 총 144회, 경항공기 100여 회의 출격을 통해 적 전방 증원 차단, 핵심시설 파괴, 후방보급로 차단 등 어느 누구보다 큰 전공을 세웠다.

1955년 4월 그는 미국에서 제트 전투기 조종교육을 받던 중 사고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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