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전쟁기념관, 현충원처럼 전쟁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방문하면서 전쟁의 끔찍한 참상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너무나 끔찍했고, 무서웠어요. (중략) 우리 국군과 함께 북한에 맞서 싸워준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한국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를 구해주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엔군과 국군, 여러분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작디작은 학생 하나가 가장 높은 단상 위에 섰다. 장소와 청중들에 압도될 법도 한데 담담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부산 이사벨중학교 금소담 양이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서 진심을 다해 정성스레 쓴 편지다.

소담 양은 H2O 품앗이 운동본부가 주최한 ‘참전용사 감사편지 쓰기’ 대회에서 900대 1의 경쟁을 뚫고 대상을 수상했다. 그 부상으로 함께 입상한 친구들과 지난 8월 프랑스로 건너가 참전노병들을 만나고 편지를 직접 읽어드렸다.

“작년에 유엔군 참전용사인 남편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셨다는 할머니 한 분이 제가 준비해 간 단소 공연을 보시고는 정말 많이 우셨어요. 돌아가신 남편 분이 아리랑을 정말 좋아해서 생전에 많이 흥얼거리곤 하셨대요. 그동안 이런 분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프랑스 말을 전혀 몰랐던 그였지만 자신을 안고 우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돼 고마움과 미안함에 북받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고. 프랑스에서 그의 아리랑 연주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노부인은 소담 양을 양녀로 삼고 싶다고 말했을 만큼 그의 진심은 6·25전쟁에 상처받은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감동으로 다가갔다.

프랑스에서 귀국하자마자 그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유엔기념공원’으로 달려가 프랑스에서 만난 노부인의 남편이 안장된 묘비를 찾았다. 그리고 노부인과 약속한 대로 그를 위해 단소로 다시 한 번 아리랑을 연주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꼭 지켜드리고 싶은 약속이었다고.

13살 소녀가 어떻게 전쟁의 참상을 이해하고 세대를 초월한 감사함과 미안함을 어디에서 느꼈던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아주 어릴 때 겪으셨던 6·25전쟁 이야기를 가끔씩 해주실 때가 있었어요. 저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겪은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내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2년 전 가족과의 미국 여행에서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만난 앞의 동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총구가 묶여 아무것도 쏠 수 없는 총이었다. 그는 여기서 ‘평화’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됐으며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고 있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장면들을 뉴스에서 보면 정말로 안타까우면서도 그것이 우리가 아님을 새삼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것이 66년 전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그때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요.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도 빨리 다툼을 끝내고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감사편지를 쓰면서 스스로 느낀 점도 많아 앞으로 국가보훈처의 ‘평화캠프’ 등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환히 웃는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 작은 소녀의 생각이 참으로 단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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