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흔들리게 했던 경주 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지난 한 달 경주와 그 인근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 짧은 시간 동안 500회에 가까운 여진에 시달렸고, 때 아닌 태풍을 만나 춥고 어두운 나날이 계속 됐다. 호젓한 보문호와 불국사를 방문하던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이렇게 지진과 태풍이 경주를 휩쓸어 시민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냈다면, 그 할퀴어진 상처를 보듬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다. 특수임무유공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쳤다.

굳건히 서라벌을 지켜오던 첨성대와 천년 가옥들이 흔들려 안타까움을 샀던 경주는 이례적인 가을 태풍을 만나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이제는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가을을 맞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내 고장 경주’를 위해 어려움 마다 않고 봉사활동에 나선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남부지회장 김철성(67)씨. 큰 체구는 아니지만 다부진 몸매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제가 사는 지역사회입니다. 봉사활동이라니 가당치 않아요. 내 집안도 어질러지면 그냥 놔두지 않잖아요? 제가 사는 제 집이니까 깨끗하게 치우고 싶은 겁니다. 고맙게도 전국의 특임 회원 분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와서 도와줬고요.”

지진과 태풍이 겹치자 전국의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 170여 명이 경주로 달려와 1박 2일간 8킬로미터에 달하는 형산강 정화활동을 해냈다. 젊은 군인 60명이 하루에 1킬로미터를 치우는 수준에 비하면 가히 놀라운 성과다.

그는 이번 경주 지진·태풍 피해 말고도 독도지킴이 활동, 경북지역 한마음 대회, 월포해상 재난구조단, 아동 성폭력과 학대 방지 운동, 노인 학대 방지 활동 등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서 활동하는 행동가다.

“저는 어려서 많이 배우지 못했어요. 먹고 사는 것도 어려웠고요. 앞만 보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속에 ‘내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을 안고 살다가 이제야 구체적인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젊은 시절, 그는 운명처럼 아내를 만난 후로 술도 담배도 끊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브라질로 건너가 7년 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 곳에서 그의 향수를 달래준 것은 색소폰이었다.

“왜 브라질로 와서 일하고 있는지 한 시도 잊지 않았어요. 그리고 언젠간 내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힘든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색소폰을 배우면서 떨쳐냈어요. 그때 배우고 연습한 실력으로 이젠 위문공연도 할 수준이 됐습니다. 그때의 어려웠던 기억이 자산이 돼 오늘 활동의 든든한 바탕이 된 셈이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힘이 될 수 있어서 사는 맛이 납니다.”

먼 남미 땅에서 외로움을 달래려 불었던 색소폰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봉사활동을 응원하며 정직하고 바르게만 살자는 아내의 말에 매일 같이 힘을 얻고 있는 그다. 요즘 그림을 그리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 것도 이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림 그리려고 서울로 전학도 갔었지요. 살기 어려워 붓을 놨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일단 지금 힘이 있을 때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좀 지난 후에는 ‘그림 그리는 할아버지’가 돼 있겠죠.”

인생의 후반전에 와서야 마음의 여유를 찾고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그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국가를 위해 살다가, 그 후에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한다.

다시 지역에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나서는 그에게 ‘진짜’ 인생 2막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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