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서로 잡담을 하고 장난도 치고 있지만, 대열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니폼을 갖춰 입기는 했는데 가만 보니 교복이 아니라 제복이다. 밝은 표정의 이들은 주니어 ROTC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학생들이다.

주니어 ROTC라는 용어는 아직 조금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만3년이 채 되지 않았다. J-ROTC는 미국 고등학생들이 4년간의 교과과정 중 자발적으로 지원해 참여하는 군사교육 형태의 리더십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5개 고등학교에서 획일적인 입시경쟁을 지양하고 미래지향적 차세대 리더를 길러내기 위해 J-ROTC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진정한 공동체 생활과 조직관리 훈련을 통해 리더십을 갖추고 건강한 리더로 성장하게 된다.

올해 처음 J-ROTC가 창단된 건국 사대부고 김예령(17), 김민주(16) 학생도 꿈을 위해 색다른 도전을 했다. 어린 나이지만 달리기, 윗몸일으키기와 같은 기초체력측정과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모두 통과한 재원이다. 각각 간호장교와 교사의 꿈을 안고 J-ROTC에 입단했다.

“J-ROTC 생도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제 꿈은 간호장교인데, 미리 진로체험을 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수능준비에 바빠 막연히 가진 꿈이 실제로 제 적성과 맞는지 확인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김예령)”

“학생들을 지도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저는 리더십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밖에 사귈 수 없는 생활에서 선배, 후배들과 어울릴 기회가 생기는 것도 정말 좋았고요.(김민주)”

누구보다 공부에 바쁘고 한참 예민할 고등학생 시기에 꿈을 위해 큰 결정을 한 생도들에게서 조금씩 변화하는 미래세대의 모습이 보였다. 두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올해 9월 창단식을 하고 교육을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프로그램의 첫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터다.

“J-ROTC는 전국에 몇 개 없는데 마침 제가 다니는 학교에 창단된 것은 제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J-ROTC 생도가 돼서 제 또래 청소년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김민주)”

“여자 ROTC는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보는 선입관이나 편견을 탈피하고 싶었고요. 여성의 리더십이 남자의 그것과 동급, 그 이상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김예령)”

자신감으로 무장한 두 생도가 몸담은 건대부고 J-ROTC는 올해 첫 외부활동으로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 참석했다. 국내 J-ROTC 생도들은 기념식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월미공원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둔치의 흙을 미국 J-ROTC 대표단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해냈다.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의미 있고 중요한 행사에 참여해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다. 과거 우리를 아프게 했던 전쟁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번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더 많이 배우게 되겠죠. 저는 비록 군대에 입대할 수는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겠습니다.(김예령)”

꾸벅 인사하고 다시 대열 속으로 사라진 그들은 이제 갓 교육을 시작한 생도건만 작은 체구 속에 큰 생각을 품고 있었다. 반듯하게 자세를 갖추고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 옛날 조국을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었던 학도병들을 떠올렸다. 모두 같은 대한의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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