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유엔 참전용사 위로연에서 6·25참전용사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전우들을 위한 연주를 하고 있다.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 들리던 것과 다르지 않다. 66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의 선율은 듣는 이 모두를 위로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전쟁이 끝났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것뿐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미국 참전용사와 가족, 해외교포 참전용사 등 70여 명이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특히 이번 재방한 행사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도 포함돼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번스타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천재 피아니스트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그는 3세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고 “피아노를 배운 바로 그 순간부터 나의 진정한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할 만큼 피아노는 그의 삶 자체다.

그런 그의 인생에 피아노 말고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6·25전쟁이다.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스물 셋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았다. 14주 군사훈련을 받은 후 14일간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한 그가 처음 배치된 곳은 대구. 그는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황폐한 산야와 절망한 사람들을 보고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번스타인은 소총과 피아노를 들고 전쟁에 임했다. 끔찍한 전쟁의 현장을 접한 그는 즉시 소속 부대장에게 “클래식 연주로 최전방 병사들을 위문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어렵게 허락을 받아 위문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함께 참전한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8개월 간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가 넘는 위문공연을 가졌다. 그는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 지친 전우들을 음악과 선율로 위로했고, 위안과 용기를 북돋아 줬다.

공연은 대체로 언덕 밑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설치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언제 적군의 공격이 있을지 몰라 피아노 옆에는 늘 소총을 놔둬야 했다. 공군은 포탄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언덕 근처를 비행하며 그와 군인들을 지켰다. 포화 속에서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는 최선을 다했다.

올해 4월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그는 영화에서도 6·25전쟁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선율로 수많은 전우들과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로했지만, 그 역시도 참전 당시 기록했던 일기장을 펼쳐보고 하루 종일 울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다.

전역 후에도 그는 한국인을 위한 연주를 이어갔다. 1955년 서울 교향악단과 콘서트를 열었고, 1960년에는 공연을 위해 방한했지만 4·19혁명으로 모든 공연이 취소되자 혁명과정에서 다친 청년들을 찾아 서울대병원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다.

유엔 참전용사 자격으로 이번 재방한 행사에 참석한 그는 모든 일정을 전우들과 함께 했다. 유엔 참전용사들은 23일 입국해 24일 한복 입어보기 등 한국 문화 체험을 한 후 오후에는 국가보훈처 주관 국군과 유엔참전용사를 위한 감사 위로연 행사에 참석했다. 25일에는 6·25전쟁 66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후 판문점을 방문해 남북 분단의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특히 27일 감사만찬 행사에서는 66년 전의 그 선율이 다시 한 번 그의 연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스물 셋의 청년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그에게도 뜻깊은 연주다.

<현장> 세이모어 번스타인 66년 만에 들려주는 선율에 ‘큰 박수’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유엔 참전용사 위로연에서 펼쳐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의 전우들을 위한 공연.

참전용사 자격으로 방한한 번스타인은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 찬다”며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으로 먼저 간 전우들을 추모했다.

이어진 연주는 한결 밝은 느낌인 브람스 인터메조 A장조.

그는 “이 곡은 모든 인간이 죽음 앞에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곡”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전우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삶에 찬사를 보내자”고 말하며,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전우들을 위로하는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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