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쓰러진 전우 생각에 가슴 먹먹해지는 계절

▲ 장용규 6·25참전자회 서울서초지회장
“6월이 되면 전투에 나섰다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 생각이 먼저 납니다. 생생했던 전투현장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간 전우는 끝내 고향을 찾지 못했는데, 우리는 또 이렇게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양산이 고향이었던 박규수. 그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전투 당시 저는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그는 정통으로 총탄을 맞아 쓰러졌습니다. 전우를 업고 후퇴하는데 그는 제 등에서 축 늘어지며 이생과는 이별을 했습니다. 내려놓으니 둘의 몸이 온통 피범벅이더군요. 조용히 얕은 참호에 묻어주고 경례를 하고 다시 후퇴했습니다. 그걸로 그와의 인연은 끝이지요.”

“그는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다’는 유언을 가족에게 전해 달라 했는데, 50년이 지나 가까스로 찾은 인연을 통해 확인하니 그 유언을 전할 가족마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중학교 4학년, 5학년의 어린 나이로 참전했습니다. 가방을 던지고 참전한 우리 학도병들은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겨우 총 쏘는 것 정도만 배운 채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저는 2달 후에 군번을 받았는데, 그 이전에 전투 와중에 전사한 친구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이제는 함께 전우들이 모여 6월이면 현충원으로 가 청소도 하고, 꽃도 갈아주면서 봉사활동을 하며 전우애를 나눕니다. 안타까운 건 인생 전체를 바친 참전유공자들이 공훈을 확인할 길이 없어 훈장도 없고, 예우도 불충분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국가가 이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름 없이 산화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 생각하자

▲ 고시성 한성대 교수, 독립기념관 감사
“우리는 930여회의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영토를 수호하며 5,000년 역사를 이어 온 자랑스러운 민족입니다. 우리는 작금의 엄중한 안보현실을 직시하고 ‘희생으로 지켜온 우리 조국’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인지,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국보훈의달은 우리나라를 지켜내겠다는 의미 있는 기간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저는 6·25전쟁 당시 강원도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15세 소년들이 지게부대(A Frame Army)란 이름의 대원으로 참전한 것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지게를 지고 식량이나 탄약 등 전시물량을 차로는 수송할 수 없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비군인참전자로 불리는 이들은 30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 장군도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최소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라며 그들을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높이 평가할 정도입니다.”

“정부도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95년 3월부터 이렇게 참전한 사람들을 발굴해 법적 보상과 예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름 없는 영웅들을 포함한 모든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상기하고 그들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응분의 예우와 지원으로 그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국민에게는 국가를 위한 헌신은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국민통합과 나라사랑 정신의 고취로 나타나고, 이것이 바로 호국보훈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아버님 뵙듯 환자의 아픔과 고독 헤아려 드리려 노력

▲ 윤영미 간호사, 서울중앙보훈병원
“호국보훈의 달이면 병원을 찾는 환자, 국가유공자분들을 보는 제 마음도 더욱 안타까워지며 애잔해집니다.”

“특히 6·25참전유공자이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지요. 살아계셨으면 88세이신데, 내가 구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들지요. 당시만 해도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계셨기에 방법이 없었고, 안타깝게 희생이 되신 셈이지요. 우리나라 전반적인 의료서비스가 너무나 열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국가유공자분들을 뵙게 되면 보상심리랄까,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별히 다른 분들과 달리 그냥 우리 아버님 같은, 우리 가족 같은 느낌이 들어 이 분들의 아픔과 고독을 더욱 헤아려서 간호하고 보살펴 드리자,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드는 생각은 연세가 많이 드셨지만 이분들의 젊은 시절과, 그 때의 열망, 나라를 위한 희생을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연세 드신 환자 이전에 ‘사람’과 ‘현재의 인생’을 함께 보면서 대화하려고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함께 나누는 삶의 이야기, 요즘 들어 점점 이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5,000년 역사 중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사는 게 우리입니다. 남 탓하지 말고, 우리 선열들이 지키고 피 흘려 가꾸신 나라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난민으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라가 소중하고 우리의 말과 건강권 행복권을 유지하고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그런 점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라사랑 정신을 생각해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 6월에는 꼭 현충원에 가서 호국영령 기릴 것

▲ 맹은비경기 평택 이충초교 6년
“6월 호국보훈의 달, 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6·25전쟁입니다. 6·25전쟁은 1950년 북한군이 기습 침략을 해서 시작된 전쟁이라고 배웠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끌려가고 다치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고 해요. 당연히 우리가 꼭 기억을 해야 하는 전쟁이지요.”

“하지만 제 주변도 돌아보면 6·25전쟁을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어떤 아이들은 ‘육점이오’라고 읽기도 해요. 우리 역사를 너무나 모르고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슬픈 역사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른들도 우리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아이들도 우리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머잖아 20년 뒤에는 나라를 이끌어 가야할 우리들은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6·25전쟁에서 희생하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 현충원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얘기로만 들었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그곳에 가 보면 훨씬 많은 걸 느낄 것 같습니다. 그곳의 호국영령들은 조국을 생각해서, 우리 땅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이번 6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꼭 가까운 현충원에 가서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싶습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는 법입니다. 우리가 커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욱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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