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히긴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특파원 자격으로 6·25전쟁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취재기간 대부분을 최전선에서 보내며 6·25전쟁의 참상과 우리군의 장점과 약점 등을 가감 없이 보도해 6·25전쟁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종군기자다.

특히 그는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통영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우리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을 직접 취재하면서 그들의 용맹성을 전 세계에 알린다.

당시 그가 헤럴드 트리뷴 본사에 타전했던 “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병사들은 귀신까지 잡는 것 같다)”라는 표현은 오늘날 대한민국 해병대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자랑스러운 애칭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한강인도교 폭파와 서울 함락을 직접 목격했고 미 지상군의 첫 전투인 스미스 특수부대의 오산전투 패배의 실상을 상세히 보도 했으나 여기자라는 이유로 전선에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방명령이 철회되자마자 최전방으로 복귀해 한국전쟁의 최대 위기국면 중 하나인 낙동강 전투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늘 종군기자의 사명감으로 현장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유엔군 병사들과 같이 빗발치는 총탄 세례를 받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가했으며, 이를 생생히 타전해 전 세계에 인천상륙작전을 알렸다.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유를 위한 희생(War in Korea)'를 써 여기자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책을 쓴 후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 정부는 45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그의 공적을 인정해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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