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풋살장에서부터 뛰어 나오는 모습이 다부지다. 놀랍게도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올해 스물여섯 백석대 3학년에 재학중인 이학도 씨. 바로 그날 오전까지도 중간고사를 치렀다는 그의 표정이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 없이 밝다. 그에게 작년 8~11월의 여행도 그런 것이었다. 전역 후 젊은 열정을 확인하기 위한 평범한 여행. 그러나 그는 여행을 ‘참전용사 찾기’라는 주제로 묶었다.

“목적이 없으면 지치기 쉽다는 선배의 조언을 새겨듣고 테마를 찾던 중, 작년이 광복 70주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6·25전쟁 65주년인 것을 알게 됐고, ‘당시 참전하셨던 분들은 아직 살아계실까’하는 생각에 인사나 드리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게 됐죠.”

난데없이 찾아가 한국에서 왔다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맞이했을까.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에 참전용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게 됐어요. 그 곳에서 처음으로 참전용사 분들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셨어요.”

서로에게 감동인 시간이었다. 감사를 표하고 나면 당연히 화두는 전쟁과 전장. 잘 알고 있어야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실제 참전하신 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꼭 듣고 기록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참전용사를 만나는 동안 의식적으로 6·25에 관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제가 듣기에도 잔혹한 전쟁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순간 ‘속에 묻어 둔 힘든 상처를 내가 꺼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쉬웠지만 제가 그 분들을 다시 아프게 할 수는 없었어요.”

▲ 네덜란드 반헤르츠 부대가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참전용사를 만난 이학도 씨.

그가 네덜란드 참전용사를 영면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역시 대사관에 문의하던 중 6·25전쟁에 참여했던 ‘반헤르츠 부대’가 운영하는 박물관에 대해 알게 됐고, 무작정 찾아간 그 곳에서 윌리엄 디그 씨의 부고를 접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한국인인 자네가 마지막을 함께 해준다면 고맙겠네’ 하시며 장례식장에 같이 가주길 부탁하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흔적은 한국에 관련된 것뿐이었어요. ‘한평생 그에게는 한국이 전부였구나’라고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국·내외 참전용사 분들께 꽃다발이라도 드릴 수 있는 작은 후원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삶을 만든 참전용사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말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일단은 시험 끝났으니 밤새 놀아야죠’ 한다.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당찬 그의 뒷모습에서 그의 바람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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