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단장

이제 완연한 봄기운이 스며들어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늦게 온다는 강원도에도 작은 꽃망울이 톡 톡 터지기 시작할 때쯤, 만개한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관객들이 원주시청으로 속속 찾아 들었다. 원주지역 중·고등학생 연합 연극단 히스토리메이커의 ‘다시 만날 날까지’ 공연이 있는 날이다. 객석에 불이 꺼지자 어수선했던 장내가 금세 고요해졌다. 이윽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급 공연이 펼쳐졌다.

국군의 패기를 표현하는 화려한 군무가 펼쳐질 때면 어김없이 탄성과 박수 세례가 쏟아졌고, 연극이 중반부로 흘러 국군과 인민군의 총이 서로를 겨냥하는 장면이 나오자 관객석 곳곳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미 공연단과 관객이 완벽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번 공연을 가장 떨리는 가슴으로 지켜봤을 히스토리메이커 이정은 단장을 만났다. 5년 전 어떤 학부모의 요청을 받고 히스토리메이커의 창단부터 지휘해 온 이 단장은 올해 겨우 스물여섯이다.

“어리지만 의식이 있는 친구들이에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학생들이 연극 공연 주제로 6·25전쟁을 들고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쩌다 이 어린 학생들이 6·25전쟁을 공연할 생각을 했을까. 원래는 대학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연극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공연을 한 달 반가량 앞둔 어느 날 단원들이 6·25전쟁을 배경으로 대본을 바꿔 달라 건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아이들의 생각이에요. 누구의 제안도 강요도 없었어요.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거기서 만난 참전용사 할아버지 몇 분께 6·25전쟁에 관해 들었다고 해요. 그리고는 당장 제게 달려온 거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전쟁의 참상, 아픔 같은 것에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고요.”

 

처음에는 30분짜리 연극으로 시작했다. 춘천의 어느 공연장에서 봉사활동 동아리와 연계해 첫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의미 깊게 본 어느 후원자가 ‘한라대학교’와 연결시켜 앵콜 공연을 했고, 그 곳에서 전몰군경유족회 원주시지부 김승은 지회장과 인연이 닿았다.

“유족회에서 우연히 연극을 접하시고는 정말 많이 감동하셨더라고요. 아이들이 이렇게 본인들의 아픔에 대해 표현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겨주셨어요. 저희 역시 김승은 회장님이 이 공연을 위해서 동분서주하신 것 절대로 잊을 수가 없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족회 원주시지부의 제안으로 재공연이 결정된 후 김승은 지회장을 비롯한 유족회원들은 히스토리메이커 팀을 성심껏 도왔다.

“각자 겪고 들으신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연극 구성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저도 아이들도 6·25전쟁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히스토리메이커 단원들의 목표는 한결같았다. 이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특히 전쟁을 잘 모르는 또래 친구들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우리 세대가 잊혀져가는 지난날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 그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시 만날 날까지’ 공연을 다시 준비하는 것은 그 이유 하나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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