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추워진 날씨에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이 계절, 보훈가족의 삶에 온기를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본인도 상이용사로 불편한 몸이지만 12년째 꾸준히 대구보훈병원에서 안내봉사를 하고 있는 김영복(72) 씨다. 노란색 봉사자 조끼가 잘 어울리는 그는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환한 미소로 다가왔다.대구보훈병원의 자타공인 터줏대감인 김영복씨는 상이군경이자 국가유공자다. 20대 때 군복무 중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을 때는 꼼짝없이 죽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위기를 이겨내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그는
웅장한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경북 청송 주왕산 자락 아래 아담한 주택이 따뜻하다. 이 집 거실에는 서만춘(92세), 조위완(88세) 어르신과 경북북부보훈지청 조정연 복지사(46세)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조정연 복지사는 곁에서 어르신이 놓치는 말이 있으면 또박또박 다시 전달해 드리고 있다. 난청의 어르신을 대신해 대화를 이어가는가 하면 대화 중간 중간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묻고, 어르신의 삶에 공감하며 손을 맞잡는 모습이 할머니를 대하는 손녀 같았다.두 분 어르신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향한 행선지는 황종만(86세) 어르
경북 포항 자금산 산기슭에 덕동문화마을이 있다. 이곳은 경북 내륙지역의 부드러운 산세와 고택이 어우러진 오랜 전통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에서 300여 년 전에 분가한 여강이씨(驪江李氏) 집성촌.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용계정, 애은당고택, 사우정고택, 여연당고택, 오덕리근대한옥 등 국가문화재와 등록문화재, 경북도지정 민속자료 등 고택이 즐비하다. 마을은 그 가치를 인정 받아 1992년 정부 지정 제15호 문화마을로 지정됐다. 이 마을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건물이 바로 덕동
경북 포항 호미곶으로 이르는 구불구불한 해안 둘레길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마를 맞댄 듯 들어선 주택들 사이에서 지번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르신이 나타나 길을 알려주신다.이웃에 대한 따뜻한 정이 살아 넘치는 마을 분위기처럼 정겨움이 우러나오는 이곳, 8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보훈가족과 보훈섬김이를 만났다. 바로 6·25참전유공자인 김상출(87) 어르신과 김윤수(62) 보훈섬김이다.김윤수 보훈섬김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르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익숙하게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그와 어르신의 인연
가을이 깊어가면서 경기 고양 일산 신도시를 지나는 길은 고운 단풍이 내려앉고 있었다. 일산신도시를 지나 10여분을 달려 만난 사람은 경기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급식용 도시락 사업을 펼치고 있는 키즈앤스쿨 이건석 대표. 그는 올해 3월부터 경기북부보훈지청과 협약을 맺고 지역의 독거 국가유공자 등에게 무료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 일찍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만난 이 대표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아파트 빌딩 사이를 지나 낮은 주택이 길게 늘어서 있는 옛 골목의 모습을 간직한 부산 수영구의 주택가, 골목 어디선가 정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골목을 밝게 만드는 노랫소리를 따라 들어가니 한명선(46세) 보훈섬김이와 김상기(87세) 6·25참전유공자 어르신이 함께 있었다.“우리 아버님이 예전에 가수셨어요. 몇 해 전에는 방송국에서 하는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셨죠.”한명선 보훈섬김이가 김상기 어르신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2년 전, 김상기 어르신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지인들에게 ‘가수’로 불릴 정도로 노래를 잘
울긋불긋 길가의 가로수들도 옷을 갈아입으며 가을 정취가 깊어가고 기분 좋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 6단지 아파트 경로당 앞에서 형형색색의 무대의상 차림의 예술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투현장에 청춘을 바치고, 은퇴 후에는 재능기부를 통해 지역사회 어르신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사람들, 이들은 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 강남구지회 예술봉사단이다. 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 강남구지회 예술봉사단은 2012년 결성돼 8년간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3·1공원, 작게 솟아오른 언덕 위에 자리한 그곳에는 독립투쟁에 한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과 동상, 조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식을 줄 모르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흐를 정도. 그늘 한 점 없는 이곳을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순국선열을 생각하며 7년째 한결같이 공원을 돌봐온 사람이 있다.7년째 청주 3·1공원 관리해온 유옥연 씨 “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 이름 빛내는 작은 일이죠”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3·1공원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 그 이름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짙은 청록의 물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 생초면의 한 주택 마당에는 모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고추모종을 살피고 있다. 내리쬐는 햇빛에 타버린 고추를 솎아내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최은(57세) 보훈섬김이와 강순득(88세) 어르신이다.“이 사람이 있어서 외로움을 잊고 살지요. 10년을 넘는 세월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기쁨도 아쉬움도 함께 나눴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지, 나는 ‘손녀딸’이라고
광복군에서 육해공군까지. 한국광복군을 1대로, 이어 후손 3대까지 7명이 모두 병장 이상의 병역을 이행한 가문이 2019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올해 병무청의 병역명문가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가문은 한국광복군에 참여했던 박영만 선생(1914~1981) 가문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였던 광복군에서부터 최근까지 우리 국방의 현장을 지킨 이들은, 특히 2대 4명의 후손이 육군, 해군, 공군에서 각각 병역을 마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박영만 선생의 차남 박재훈 예비역 해군 대위는 자랑스러운 광복군의 후손으로, 오늘 대한민국을 지킨 국방
경남 창원시 성산구의 한 아파트, 활짝 열린 현관 문밖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함께 열린 문 안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최경미(53세) 보훈섬김이가 김종철(87세) 6·25참전유공자 어르신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은 잘 드셨는 지, 식사는 어떻게 하셨는 지, 아프신 데는 없는 지 여쭤보고 집안 여기저기 손길이 필요한 곳은 없는 지 확인한다.최경미 보훈섬김이를 ‘최 선생’으로 부르는 김종철 어르신은 집안일을 꼼꼼히 살피며 작은 일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최
김태연 지사 유해봉영식에 학교·학생 함께 참여 지난 4월 9일 김포공항 입국장. 김태연, 이재수, 강영각 지사의 유해 봉영식이 열리는 이곳에 김태연 지사의 대학 후배들인 숭실대 관계자들이 모였다. 중국에서 이뤄진 파묘행사에서부터 안장까지의 모든 절차에 함께한 숭실대는 스스로 ‘독립유공 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번 행사 참여를 기획하고 봉영식에 직접 참석해 선배의 환국을 직접 맞이한 숭실대 황준성 총장을 만났다.“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 대학으로서는 특별하
권태원 (6·25참전유공자회 대전 대덕구지회장)“전장의 전우들 생각하면 가슴 시려지는 계절”“지금도 눈을 감으면 눈 쌓인 전장에서 하나 둘 쓰러지는 전우들의 모습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막 20살이 되던 해 전쟁이 터졌고 그 해 참전하게 됐지요. 그리고 12월 눈 내린 장진호,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생했기 때문인지 지금도 6·25라는 말을 들으면 뼛속까지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 듭니다.”“그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으로 많은 전우들이 생을 달리했고 수백 명의 전우들 중 저와 10여 명만이 살아남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신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6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아파트 문 앞에 다가서자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밝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모녀 같기도, 자매 같기도 했다. 바로 광주지방보훈청 김옥엽(56) 섬김이와 신정자(82) 어르신이다. 두 사람은 ‘봄날’ 신록 빛깔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빨간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멋쟁이 신정자 어르신의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베란다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제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얼마 전 손목과 발목을 다
본격 여름 햇살이 기운을 더해가는 지난 20일 대전 유성구, 아파트 숲속에 자리 잡은 대전동산고 4층 대형 수업장에 학생들이 하나씩 모여들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6·25참전자회가 주최하는 특강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현장감 있는 동영상과 각종 시청각 자료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열띤 강의가 진행된다. 오늘 강사는 6·25참전자회 전문강사인 황인효 강사. 올해로 9년 째 강의에 나서는 그는 최근 ‘평화와 번영’ 그리고 ‘6·25전쟁’을 한데 녹여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강
봄볕 가득한 인천 서구 가정동의 조용한 주택가. 독립운동가 후손인 양경자 어르신(84세)은 오늘도 옥상에 올라 권순복 보훈섬김이(61세)가 ‘어디쯤 오고 있나’ 내려다 보신다. 일주일에 한 번 권순복 섬김이가 방문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양경자 어르신은 권순복 섬김이를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다.“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고, 내 얘기도 잘 들어주니 얼마나 좋아. 딸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좋아요. 내 친자식도 아닌데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주고, 집안 살림도 도와주고,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했던가. 슬픔을 아름다운 나눔으로 이겨내고 새로운 삶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장철희 일병의 부모 장병일·원용이씨를 만났다. 벚꽃이 진 자리에 초록이 돋아나는 계절, 서울 서초구에서 장철희 일병의 어머니 원용이씨는 겨울을 이겨낸 편안한 모습이었다.장병일·원용이 부부는 2011년부터 아들 장철희 일병이 졸업한 대진고등학교에 매년 200만원씩을 지원하고, 장철희 일병의 천안함 전입 동기 3명에게 대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이 빼꼼히 얼굴을 들이미는 초봄, 신춘례(57) 섬김이는 장윤근(86) 어르신 댁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봄바람을 집안 가득 들인다.서울북부보훈지청 신춘례 섬김이를 맞이하는 장윤근 어르신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서울 수락산 아랫자락 위치한 주택, 귀가 조금 불편한 어르신은 섬김이가 방문하는 날에는 미리 시간 맞춰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신다. 혹여나 문을 잠근 채로 깜빡 잠이 들까봐 하는 ‘준비’다.신춘례 섬김이는 집안을 바삐 정리하고, 어르신 옆에 앉아 병원은 잘 다녀오셨는지, 전에 만들어드린 반
2015년 8월 10일 충격적인 뉴스로 연일 나라가 들썩였다.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목함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인들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된 그 사고로 하재헌 예비역 중사(25)는 두 다리를 잃었다. 사고 후 재활을 위해 시작한 조정에서 재능을 발휘해 오는 4월부터 장애인조정 국가대표로 활동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를 경기도 성남에서 만났다.하재헌 예비역 중사는 현재 의족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사고 전후로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죠. 걷고, 움직이는 모든 일을 할 때 체력소모가 3배 정도 됩니
임우철 (애국지사)“나라를 지키는 것,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 돌아가도 또 독립운동 결단”“내 나라를 다른 나라에 빼앗겼는데 가만히 있을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임우철 애국지사를 만났다. 임 지사는 1941년 일본에서 내선일체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궁성요배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체포돼 징역 2년 6월을 살았고,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렇게 20대 청년이었던 시절, 독립운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