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성찰, 그리고 평화. 6·25전쟁 70주년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오늘을 성찰하는 소중한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깊이 있는 토론과 함께 국민과 함께하는 여러 기념사업을 펼쳤다. 은 국방홍보원 와 함께 좌담회를 열어 올 한 해 동안 진행된 70주년 기념사업의 의미와 남은 일, 그리고 새로운 미래보훈을 위한 과제를 함께 짚어본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정호섭 6·25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 캠벨 에이시
독립운동가 서훈과 독립유공자 지정은 관련법에 따르는 것이지만, 법의 제정이나 적용은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또한 독립운동이 한국사회에 준 공헌이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정치·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17일 독립기념과 독립운동사연구소는 ‘독립운동가 서훈의 역사와 과제’라는 학술포럼을 열고 독립운동가 서훈이 시기별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검토하고 향후 발전과정을 검토했다. 이날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의 발표 ‘해방 이후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요약 정리한다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민주묘소의 잔디가 노랗게 변신해가고, 묘소 곳곳의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야산 경계 쪽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린다.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유춘학 조경관리원(56)이 부지런히 기계톱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경계수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있다. 겨울 전에 웃자란 수목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면 내년 봄 아름답게 푸르름을 자랑하리라는 기대에 유 관리사의 표정이 밝다.유 관리원은 날마다 내 집처럼 민주묘지를 가꾸는 그의 부지런함과 이곳을 찾는 유족 관람객들에게
지난달 17일 국립대전현충원 제6묘역에서 의장대의 경건한 조총 소리가 현충원을 울렸다. 이날 이곳에서는 고 조종희 애국지사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 지사와 배우자인 김필규 여사의 유해 안장식이 열렸다. 이곳에서 고국을 다시 찾은 두 분의 영정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은 조 지사의 둘째 아들인 조은석씨(60)를 만났다.조종희 지사는 1943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잇는 무장투쟁 단체인 칠인순국회를 조직해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그는 일경에 체포돼 평양형무소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옥
“모든 동료들이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하게 된다면 국가유공자를 위한 예우도 더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달 든든한 보훈인에 선정된 대전지방보훈청 이수지(32) 주무관은 직원들 사이의 ‘소통’과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훈’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유공자를 더 잘 예우해드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그는 대전지방보훈청에 몸담은 1년 동안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청산리 전투와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는 ‘청산리 대첩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렸다.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이사장 전지명) 주관으로 열린 이날 세미나는 단국대 한시준 교수 사회로 김주용 원광대 교수(해방 전 만주지역 한인사회 형성과 변화), 김종해 한중우의공원 관장(북로아군실전기를 통해 본 청산리 대첩의 군사 전술적 고찰), 장윤정 단국대 교수(노래로 본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등이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세미나는 무관객 비대면으로 진행됐으며 온라인 유튜브로 송출됐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극단의 현장이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은 목숨을 걸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명에 총을 겨눈다. 전장 주변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편에 서다 저편에 서다 희생당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다. 그 상처는 다시 공동체의 상처가 되어 오랜 세월을 견디며 치유의 과정을 가게 된다. 6·25전쟁을 두고 ‘기억’ ‘성찰’ ‘평화를 위한 반성’으로 조명했다. 지난달 15, 16일 있었던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국제학술회의의 소리를 듣는다.‘끝나지 않은 세계전쟁’ - 성찰과 반성올해로 한국
6·25전쟁 연구는 이제 그간 많이 다뤄져왔던 민중, 마을주민 등 아래로부터의 시선 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주체의 시선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즉 권력, 재산, 거주지, 이념, 성, 나이에 있어 다양한 주체가 6·25전쟁을 어떻게 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생활과 밀착된 문제를 접하는 구체적 느낌에 주목해 어떠한 감각과 감정들이 ‘전쟁’이라는 인상을 구성했는지 보고자 했다.이러한 감각과 감정은 한국인의 뇌리와 몸에 깊숙이 자리 잡아 그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무의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쟁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
갑작스레 다가온 추위를 무색하게 할 따뜻한 소식이 들려왔다. 대구 수성구의 신명여중에 다니는 500명의 학생들이 지난달 손수 마스크 스트랩(마스크 오염·분실 방지용 끈) 1,500개를 만들고 손편지를 써서 국가유공자에게 선물하는 사랑나눔 봉사를 펼쳤다는 것이다. 가을 단풍이 녹아들기 시작한 대구 수성구 신명여중에서 이번 사랑나눔 봉사의 주역인 전미영(54) 교사와 500명의 학생들을 대표해 이소현(15), 김수연(15) 학생을 만났다.중·고교생의 봉사활동은 주로 학교 주변 미화활동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이번 특별한 봉사활동이 이뤄진
서울지방보훈청 조익환 주무관“보훈가족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며 진정한 의미의 친절을 실천하자.”서울지방보훈청 조익환(31) 주무관이 2016년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생각한 각오다. 올해로 5년차를 맞은 그의 하루하루 역시 보훈가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순간들이다.그는 올해 1월 ‘스마일 친절인’에 선정됐다. 흔히 ‘친절하다’고 하면 함박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떠올리지만 조익환 주무관의 ‘스마일 친절인’ 선정은 국가유공자들의 삶과 가치와 처지를 깊이 이해한데서 가능했다.그의 친절은 타고난 꼼꼼한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군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의 힘으로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 수립 이후 20년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복군 창군을 통해 군사력(무력)을 갖춤으로써 국권과 국토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투쟁과 작전역량을 갖추게 됐다. 올해로 창군 80년을 맞으며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된 한국광복군 창군과 그 활동, 의미를 짚어본다.조국독립의 불꽃, 한국광복군 창군의 의미1919년 4월 11일, 한 달여 전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 중인 3·1독립운동의
80년 전 중국의 충칭, 이역만리 먼 땅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조직, 광복군이 첫 시작을 내디뎠다. 무력을 갖춰 일제에 맞서 민족해방을 목표로 달렸던 젊은 청년들은 2020년 이제 10여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오늘까지 한국광복군동지회라는 이름으로 굳건한 광복의 의지를, 기개를 이어왔으며, 그 중심에는 한국광복군동지회장 김영관(96세) 애국지사가 있다.“지금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이자 오늘날 국군의 뿌리입니다. 조국광복을 위한 광복군 정신은 80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고 피란민들이 흥남부두를 통해 철수할 수 있도록 기여한 역사적인 전투로 남은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바로 흥남철수작전에서 10만명의 피란민을 살린 주인공인 에드워드 포니(Edward H. Forney) 대령의 손자 네드 포니(Ned Forney, 56)를 만났다.그는 장진호전투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17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전투 전사연구 심포지엄에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장진호전투가 흥남철수작전과 한미동맹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흥남철
광주 제대군인지원센터 김민숙 직업상담사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이 바로 제대군인입니다. 제대군인의 인생 2막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나아갑니다.”제대군인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고 신문기고나 언론인터뷰를 통해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홍보해 온 김민숙 직업상담사는 올해로 이 일에 참여한 지 14년차 되는 베테랑이다.상담사로 일하며 수 많은 제대군인의 취업을 돕는 것은 물론, 제대군인지원센터 초창기에 일을 시작해 타 기관의 여러 취업지원 시스템과 서비
항일독립운동과 의열투쟁의 중심은 언제나 남성을 중심으로 서술됐으며, 남성의 역사로 기억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와 독립투쟁의 주체는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은 단지 그의 아내로 부차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제 여성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성은 국내외 독립운동의 핵심 동반자로 활동한 것을 넘어 근대교육을 받으며 독립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낸 경우에서부터 다소 천시 받았던 기생 등 기층민중 출신의 독립운동까지, 그 폭은 넓고 깊었다. 다시 ‘세상의 절반’인 여성독립
일제 강점기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현장에는 많은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시대와 함께하는 역사의 주역으로서 여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잃은 슬픔에 비분강개했고, 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일제 식민지에서 민족차별을 없애기 위한 민족해방이 곧 여성해방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여성들도 많았다.항일독립운동은 단순히 저항하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근대국가의 주인이 되는 역사적 역동의 운동이었다. 그래서 3·1운동 이후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끝나지 않을 것만같던 지독한 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다시 맑은 기운을 되찾았다. 푸릇한 생명력으로 가득차 짙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한가운데서 독립유공자 후손인 김형근(82)씨를 만났다. 지난달 1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형근씨는 어머니 고 박두옥 선생을 대신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박두옥 선생이 전주에서 교원중심의 일제에 반하는 비밀결사단 활동을 펼친지 80년만이며, 박 선생이 돌아가신지 무려 35년만의 일이다.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 단상에 오르는 김형근씨는 아득한 기억
질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으로 또 다시 입증되었다. 신종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의 주기적인 출현은 인류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기후변화 등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자연적인 현상도 얽혀 있기 때문이다.2015년 5월 21일 우리나라에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것도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같은 해 1
국립대전현충원 신창규 주무관 지난해 10월 문을 연 국립괴산호국원, 이곳은 개원 전부터 지금까지도 이장·안장신청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국립괴산호국원에는 올해 7월까지 1만9,000여기가 안장됐으며, 국립호국원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심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창규(49) 주무관이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1년, 국립임실호국원에서 2년간 근무하며 환경 시설 분야 관리부터 선양 업무까지 노하우를 축적해온 그는 지난해 국립괴산호국원 개원준비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신속한 안장서비스의 가장 큰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에서 6.25전쟁까지 이르는 시대적 배경을 때로는 담대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써내려간 하근찬의 단편소설 「수난이대」에는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온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 자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수난이대의 등장인물인 아버지 박만도는 삼대독자인 아들 박진수가 생사를 알 수 없던 전쟁터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깻바람이 절로 나서 아들을 배웅하러 역전으로 향한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그는 멀쩡한 섬에 비행장을 닦는 공사 중에 비행기의 폭격으로 왼쪽 팔을 잃었다. 박만도는 애써 태연한 체하며,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