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 시대,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만남도 대화도 이해도 소통도. 가을의 공연장을 흠뻑 적실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시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19 단계가 조정되면서 드디어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아연 활기를 띤 공연장에서 현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연주자도 관객도 바쁜 걸음으로 활짝 열린 공연장 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가을이 다시 멋진 선율로 되살아나고 있다.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가을에 빠지다’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KBS교향악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그 터널을 지나온 심정과 거기서 건져 올린 한 줄기 희미한 빛 같은 것을.이런 경험은 쉽사리 잊히지 않으므로 이들은 자신과 세상을 자양분 삼아 글쓰기로 생을 밀고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두 번째 책이 기다려진다.(‘읽는 직업’, 이은혜, 마음산책)
▶ 누군가가 나의 ‘흉’을 본다면, 그건 ‘상처가 아문 자국’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흉을 가졌다는 것은 나와 세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재건되는 치유의 역사를 증명한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이다. 상처와 흉의 반복이 바로 나라는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다.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도 “마음은 상처받음으로써 살아간다(Hearts Live By Being Wounded)”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장동선 뇌과학 박사, ‘한국일보’ 칼럼 중)
식물의 시간으로 보면 화려한 꽃은 그저 열매를 맺기 위해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모든 식물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시간은 열매의 시간이고 꽃이 지고 누구의 눈길도 머물지 않는 것은 나무나 꽃에게 오히려 다행인 일이다. 눈에 띄어 섣부르게 익지도 않은 열매가 꺾이지 않으려면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는 게 외려 더 안전한 일일 테니까. 꽃이 지고 아무도 봐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열매의 시간이 온다.(‘숲에서 한나절’, 남영화, 남해의봄날)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의미의 정의는 어떤 것일까. 행복과 정의 같은 가치들은 인류 역사 매순간마다, 문화마다 조금씩 다른 곳을 지향해 왔다.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 세계 유토피아와 모두가 두려워하는 악몽과도 같은 디스토피아까지. 다양한 세계를 그린 소설을 통해 우리들이 이해하는 행복과 정의, 과학과 종교, 국가의 역할까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의 급습 앞에서. 토마스 모어, 돋을새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
▶ 무엇보다 아픔은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늘 그 아픔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픔들끼리 서로 물어뜯으며 또 다른 아픔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그 아픔들이 함께 진정한 아픔들의 적과 맞서 싸울지 말입니다. 아픔들의 연대만이 또 다른 아픔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들뢰즈의 말처럼 공동체의 유일한 통일성은 서로에 대한 ‘연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칼럼 중)
음악과 미술, 문학 등 그 형태는 다르지만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가의 작품에는 예술가의 인생이 녹아있다. 번쩍이는 강렬한 경험, 예술을 향하 뜨거운 열정,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 예술가들의 인생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는 아찔한 그들의 인생과 열정을 고스란히 통과하며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감동 실화“세월은 흘러가고 나는 살아있다.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도 살아야 돼. 그래서 포기하면 안
도와달라는 말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받은 도움으로, 조금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고, 조금 더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아슬아슬 버거운 삶을 견뎌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 또한 작은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희한한 위로’, 강세형, 수오서재)
▶ 인류의 진화는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은 이동하지 않는 인간, 식물이 된 인간의 등장이다. 식물화한 새로운 삶의 양식은 도시와 건축의 전면적인 재편을 요구한다. (중략) 누에고치를 뚫고 나비가 태어나듯이 도시는 이제 탈바꿈해야 하는 시점이다. 비전을 다시 세우고 법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 미래를 창조하는 힘은 공동체의 의지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어떤 곳에 살기 원하는가?(김승회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칼럼 중)
서양 고전음악사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 다시 그의 연주가 시작된다.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해. 세계적으로도 베토벤 관련 축제와 연주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의미 있는 연주들이 준비되고 있다. 연주회 상황이 전만 못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나누긴 어렵지만 연주는 계속되고 음악회는 오늘도 음율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은 베토벤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새 형식과 주제, 클래식 레볼루션롯데문화재단은 개관 4년을 맞이하는 롯데콘서트홀에서 8월 1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저마다의 세계에 갇혔다고는 했지만 사실 저마다 갇힌 구획의 크기는 다르다. 물리적인 의미로든, 심리적인 의미로든 그러하다. 당연히 견뎌야 할 삶의 크기도 다르다. 갇힐 곳도 없는, 거리에 방치되어 보호받지 못한 삶도 있었다. 이 바이러스가 끝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여전히 격리되고 떨어지고 수시로 갇혀야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내 곁의 이웃이 더 바깥으로 밀려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보는 방법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한지혜 소설가, ‘경향신문’ 칼럼 중)
푸른 녹음이 무르익어가는 여름의 초입, 선선한 바람과 서서히 따가와지는 햇살이 또 다른 계절을 맞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 가슴 두근거리며 발걸음이 절로 밖을 향하는 계절이지만 코로나19로 조금 더 발을 묶어둬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수만 번 번뇌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은, 이제 원로가 된 시인의 숨결을 느껴본다. 황지우 시인19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시인 황지우. 기존의 정통적인 시 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리며 대담한 실험과 전위적인 시
마음을 쓰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우리라는 사람의 일부가 될 때 가능하다. (중략)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장미에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고 거름을 준다. 그런데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뜻하지 않게 실망하거나 깊은 슬픔을 겪을 위험이 따른다. 흔히 하는 말처럼 그것이 바로 사랑의 대가다.(‘절제의 기술’, 스벤 브링크만, 다산초당)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은 그 근원이 없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찾아오는 저마다의 소외감은 해법이 마땅찮은 아픔이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의 진폭과 알 수 없는 허허로움은 인생의 여운인 듯도 하다. 이럴 때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이 있다면, 우리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친구에게 편안히 기대며 일상을 버티며 행복을 바랄 수 있지 않을까.음악은 세상에 넘쳐난다. 각각의 효용도 다르고 즐기는 방법도 다르다. 젊은이의 음악과 노년의 음악도 다르다. 누구에게는 음악이 생활의 일부이고, 취미활동이 되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창비)
위기는 본질을 드러낸다. 한 사회의 수준과 국가의 실력도 위기 때 확인된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공포감이 증폭되며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의 바이러스도 창궐했다. 목숨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 각자도생만 횡행한다면 사회는 정글이 되고 가장 큰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를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주는 백신 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박일근 기자, ‘한국일보’ 칼럼 중)
우리나라 민주화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던 시기. 평범한 학생이고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외쳤던 민주화를 향한 강렬한 염원은 지금도 우리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 역사와 시민들의 가슴에 깊숙이 새겨진 민주운동의 역사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역사의 한 장면이 된 그날의 기억들은 문학, 공연, 영화로 재탄생해 그 시대를 지나왔던 이들에게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는 보통사람들의 피땀으로 뜨겁게 쟁취해낸 민주화의 의미를 가슴 저리게 전달하고 있다. 오늘 영화로 그 뜨거움을 마주한다.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유학생 출신답게 호 선생은 생각했다. ‘그레이트 라이드’였다고, 그 좋았던 라이드가 이제 끝나간다. 그렇다면 나눠줘도 좋을 것이다. “내가 운을 좀 나눠줄게. 악수.”(정세랑, ‘피프티 피플’, 창비)
“늙어간다는 건 낙심의 사유가 아니라 소망의 토대이고, 조금씩 퇴락해가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성숙해가는 과정이고, 이를 악물고 감수해야 할 운명이 아니라 두 팔 벌려 맞아들여야 할 기회다.” (헨리 나우웬, ‘나이 든다는 것’ 중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불행일까 축복일까. 우리가 한 살 더 나이 드는 날인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처럼 나이 드는 것은 축복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긴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세월이라 하지 않았던가. 잘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더 행복해지는 것, 그 길을 함께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