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민주묘소의 잔디가 노랗게 변신해가고, 묘소 곳곳의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야산 경계 쪽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린다.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유춘학 조경관리원(56)이 부지런히 기계톱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경계수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있다. 겨울 전에 웃자란 수목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면 내년 봄 아름답게 푸르름을 자랑하리라는 기대에 유 관리사의 표정이 밝다.유 관리원은 날마다 내 집처럼 민주묘지를 가꾸는 그의 부지런함과 이곳을 찾는 유족 관람객들에게
“모든 동료들이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하게 된다면 국가유공자를 위한 예우도 더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달 든든한 보훈인에 선정된 대전지방보훈청 이수지(32) 주무관은 직원들 사이의 ‘소통’과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훈’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유공자를 더 잘 예우해드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그는 대전지방보훈청에 몸담은 1년 동안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서울지방보훈청 조익환 주무관“보훈가족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며 진정한 의미의 친절을 실천하자.”서울지방보훈청 조익환(31) 주무관이 2016년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생각한 각오다. 올해로 5년차를 맞은 그의 하루하루 역시 보훈가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순간들이다.그는 올해 1월 ‘스마일 친절인’에 선정됐다. 흔히 ‘친절하다’고 하면 함박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떠올리지만 조익환 주무관의 ‘스마일 친절인’ 선정은 국가유공자들의 삶과 가치와 처지를 깊이 이해한데서 가능했다.그의 친절은 타고난 꼼꼼한
80년 전 중국의 충칭, 이역만리 먼 땅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조직, 광복군이 첫 시작을 내디뎠다. 무력을 갖춰 일제에 맞서 민족해방을 목표로 달렸던 젊은 청년들은 2020년 이제 10여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오늘까지 한국광복군동지회라는 이름으로 굳건한 광복의 의지를, 기개를 이어왔으며, 그 중심에는 한국광복군동지회장 김영관(96세) 애국지사가 있다.“지금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이자 오늘날 국군의 뿌리입니다. 조국광복을 위한 광복군 정신은 80
광주 제대군인지원센터 김민숙 직업상담사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을 하다가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이 바로 제대군인입니다. 제대군인의 인생 2막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나아갑니다.”제대군인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돕고 신문기고나 언론인터뷰를 통해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홍보해 온 김민숙 직업상담사는 올해로 이 일에 참여한 지 14년차 되는 베테랑이다.상담사로 일하며 수 많은 제대군인의 취업을 돕는 것은 물론, 제대군인지원센터 초창기에 일을 시작해 타 기관의 여러 취업지원 시스템과 서비
국립대전현충원 신창규 주무관 지난해 10월 문을 연 국립괴산호국원, 이곳은 개원 전부터 지금까지도 이장·안장신청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국립괴산호국원에는 올해 7월까지 1만9,000여기가 안장됐으며, 국립호국원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심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창규(49) 주무관이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1년, 국립임실호국원에서 2년간 근무하며 환경 시설 분야 관리부터 선양 업무까지 노하우를 축적해온 그는 지난해 국립괴산호국원 개원준비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신속한 안장서비스의 가장 큰
92세의 노병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야속할 정도로 긴 시간 애타게 그리워했던 전우들이 유해로 고국의 땅을 밟았다. 그는 미국에서 온 국군전사자 중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7인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름 없는 140구의 유해를 보며 70년 전 전장에서 스쳐간 수많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박운욱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이 만난 6·25전쟁 70주년은 그래서 특별했다. 그들에게 일일이 건네는 인사가 주변을 엄숙하게 했다. 모든 순간에서 이제껏 살아온 삶과 전쟁과 전우가 스쳐지나갔다.기념 행사 후 다시 만난 그는 남아 있는 ‘의용군
보훈처 예우정책과 안준범 연구원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공항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독립유공자 계봉우·황운정 애국지사의 유해봉환식이다. 이날 계봉우 지사의 유족들은 ‘죽으면 고국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대통령이 최고의 예우로 맞아주어 크게 감격했다. 이 역사적인 유해봉환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로 뛴 안준범 연구원(44)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국외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작고 후 현지에 안장된 순국선열의 묘소를 찾아 관리하고, 유해를 국내로 봉
국가보훈처는 이달 25일 ‘든든한 보훈’ 정책브랜드를 발표하며, ‘든든한 보훈인’을 선정했다. ‘든든한’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각 분야의 역량 있는 직원을 발굴하고 격려해 솔선수범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달에는 행정직원부터 연구원, 직업상담사, 보훈복지사와 보훈섬김이, 의료인 등을 포함해 12명의 보훈처 직원들이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됐다.대구보훈병원 박규환 전문의 지난 2월 대구와 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가운데 대구보훈병원은 감염병전담기관으로 지정됐다. 대
최근 한 국가유공자가 30년간 국가유공자 수당으로 모은 2,000만원을 코로나19 극복에 써달라며 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거주하고 있는 무공수훈자 주관섭 씨다.지난달 8일 주관섭(99세)·백영순(82세) 부부가 제주도 서귀포시청을 직접 방문해 적지 않은 금액을 코로나19 극복 기금으로 기탁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소득이 넉넉지 않은 부부가 지난 30년간 어렵게 모아온 성금을 기꺼이 내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행복한 기부로 인해 빛이 났다.주관섭 씨는 6·25전쟁
“서로가 하나 되어 함께 사는 ‘대동세상’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하면 대규모 시위와 폭력적 진압, 도청 앞의 시신, 마지막 진압작전,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당시의 광주는 달랐습니다. 계엄령을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시위로 나타났고, 계엄군이 물러난 다음에는 함께 수습을 논의하면서 주먹밥을 나누고 격려하면서 이뤄낸 광주는 대동세상이었습니다.”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 3학년이었던 김용철 씨(62)는 40년 전을 떠올리며 ‘민주’와 ‘대동세상’ 두 단
보훈사각지대 해소, 국가책임 확대로 국가유공자 삶 보살필 것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다. 대한민국을 되찾고, 지키고, 바로 세운 국가유공자의 뜻을 기리고 예우하는 일, 그것은 반듯한 나라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취임 이래 6개월간 국가보훈처가 보훈을 통해 그 희망을 실천하고 앞당기는 기관이 되도록 힘써왔다. 국가보훈처를 정책부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국가유공자와 가장 밀접한 보훈심사 체계의 중심을 잡는 일에 특히 심혈을 기울여 왔다. 박 처장에게 6개월을 넘어서는 소회와 새해 보훈정책에 대해
얼어붙은 공기와 차가운 바람에 문을 꼭 걸어 잠그게 되는 겨울, 인천 미추홀구에 새 단장을 마친 인천보훈지청 1층의 한 공간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이곳은 2018년 처음 심리상담 서비스를 개시한 보훈가족 마음나눔터. 그곳에는 찬 공기도 밀어낼 밝은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보훈가족을 환영하는 김지은(40세) 상담사가 있었다.김지은 상담사는 보훈가족과 지청 직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공간임을 알리기 위해 마음나눔터의 문을 항상 열어둔다. 보훈가족과의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의 하나다.그는 심리상담사
웅장한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경북 청송 주왕산 자락 아래 아담한 주택이 따뜻하다. 이 집 거실에는 서만춘(92세), 조위완(88세) 어르신과 경북북부보훈지청 조정연 복지사(46세)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다.조정연 복지사는 곁에서 어르신이 놓치는 말이 있으면 또박또박 다시 전달해 드리고 있다. 난청의 어르신을 대신해 대화를 이어가는가 하면 대화 중간 중간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묻고, 어르신의 삶에 공감하며 손을 맞잡는 모습이 할머니를 대하는 손녀 같았다.두 분 어르신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향한 행선지는 황종만(86세) 어르
경북 포항 호미곶으로 이르는 구불구불한 해안 둘레길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마를 맞댄 듯 들어선 주택들 사이에서 지번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르신이 나타나 길을 알려주신다.이웃에 대한 따뜻한 정이 살아 넘치는 마을 분위기처럼 정겨움이 우러나오는 이곳, 8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보훈가족과 보훈섬김이를 만났다. 바로 6·25참전유공자인 김상출(87) 어르신과 김윤수(62) 보훈섬김이다.김윤수 보훈섬김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르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익숙하게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그와 어르신의 인연
아파트 빌딩 사이를 지나 낮은 주택이 길게 늘어서 있는 옛 골목의 모습을 간직한 부산 수영구의 주택가, 골목 어디선가 정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골목을 밝게 만드는 노랫소리를 따라 들어가니 한명선(46세) 보훈섬김이와 김상기(87세) 6·25참전유공자 어르신이 함께 있었다.“우리 아버님이 예전에 가수셨어요. 몇 해 전에는 방송국에서 하는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셨죠.”한명선 보훈섬김이가 김상기 어르신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2년 전, 김상기 어르신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지인들에게 ‘가수’로 불릴 정도로 노래를 잘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 그 이름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짙은 청록의 물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 생초면의 한 주택 마당에는 모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고추모종을 살피고 있다. 내리쬐는 햇빛에 타버린 고추를 솎아내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최은(57세) 보훈섬김이와 강순득(88세) 어르신이다.“이 사람이 있어서 외로움을 잊고 살지요. 10년을 넘는 세월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기쁨도 아쉬움도 함께 나눴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지, 나는 ‘손녀딸’이라고
경남 창원시 성산구의 한 아파트, 활짝 열린 현관 문밖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함께 열린 문 안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최경미(53세) 보훈섬김이가 김종철(87세) 6·25참전유공자 어르신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은 잘 드셨는 지, 식사는 어떻게 하셨는 지, 아프신 데는 없는 지 여쭤보고 집안 여기저기 손길이 필요한 곳은 없는 지 확인한다.최경미 보훈섬김이를 ‘최 선생’으로 부르는 김종철 어르신은 집안일을 꼼꼼히 살피며 작은 일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최
권태원 (6·25참전유공자회 대전 대덕구지회장)“전장의 전우들 생각하면 가슴 시려지는 계절”“지금도 눈을 감으면 눈 쌓인 전장에서 하나 둘 쓰러지는 전우들의 모습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막 20살이 되던 해 전쟁이 터졌고 그 해 참전하게 됐지요. 그리고 12월 눈 내린 장진호,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생했기 때문인지 지금도 6·25라는 말을 들으면 뼛속까지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 듭니다.”“그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으로 많은 전우들이 생을 달리했고 수백 명의 전우들 중 저와 10여 명만이 살아남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신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6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아파트 문 앞에 다가서자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밝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모녀 같기도, 자매 같기도 했다. 바로 광주지방보훈청 김옥엽(56) 섬김이와 신정자(82) 어르신이다. 두 사람은 ‘봄날’ 신록 빛깔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빨간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멋쟁이 신정자 어르신의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베란다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제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얼마 전 손목과 발목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