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봄기운이 스며들어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늦게 온다는 강원도에도 작은 꽃망울이 톡 톡 터지기 시작할 때쯤, 만개한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관객들이 원주시청으로 속속 찾아 들었다. 원주지역 중·고등학생 연합 연극단 히스토리메이커의 ‘다시 만날 날까지’ 공연이 있는 날이다. 객석에 불이 꺼지자 어수선했던 장내가 금세 고요해졌다. 이윽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급 공연이 펼쳐졌다. 국군의 패기를 표현하는 화려한 군무가 펼쳐질 때면 어김없이 탄성과 박수 세례가 쏟아졌고, 연극이 중반부로 흘러 국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소 봉쇄정책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국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연합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국의 영토 주변에 있는 국가들을 차례로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소련은 20세기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완충지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에 소련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그들이 점령한 지역을 공산주의 위성국가로 만들어 갔다. 이른바 공산주의 팽창정책이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로비아, 북한이 그 희생물이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 지나간 자리는 평소보다 따뜻한 기온이 감싸 귀경길에 지친 사람들을 포근히 감쌌다. 겨울을 끝자락을 알리려는 건지, 봄을 부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빗줄기와 함께 사진작가 이병용 씨의 작업실을 찾았다.이 씨는 ‘한국전 참전용사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진작가다. 현재까지 에티오피아와 터키 작업을 마무리 하고 콜롬비아 일정을 계획 중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출판문화사업진흥원에서 출판지원금을 받아 ‘터키편’을 출간했다. 참전국 순방과 전시회 등 모든 경비를 혼자서 처리하다 보니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5년
북한의 기습남침에 의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회원국들은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달려왔다. 이른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6개의 대륙에서 빠짐없이 참가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자국의 젊은이들을 소집하여 국제평화와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기꺼이 참전했다. 남북아메리카에서도 캐나다와 콜롬비아가 어김없이 참전했다.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의 일원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맹방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미국과 함께 북아
많은 기상예보가 맹추위를 예보하던 날, 과연 이상난동을 뚫고 찾아온 동장군은 매서웠다. 하늘은 청명했지만 선득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그러나 햇살만은 가득히 따뜻했던 날, 괴산 보훈회관에 국가유공자들이 모여들었다. 괴산군 보훈천사회 전 회장 장수자 씨(65세). 그는 13년 전인 지난 2003년 고엽제 후유증을 앓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매일같이 보훈회관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딱히 무엇을 바라고 나간 것은 아닌데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얻은 것이 많았다.“바깥양반이 세상을 뜨고 나서 힘든 시기에 모두가 제 곁에 있어줬고,
프랑스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에 해군과 육군을 파병했다. 프랑스는 먼저 해군 파병을 결정했다. 1950년 7월 22일 프랑스 해군군함 그랑디에르(La Grandiers) 함을 한국해역에 파견했다. 한국해역에서 그랑디에르 함은 138밀리 대포 4문을 장착하고, 1950년 8월에 단행된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과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이후에도 유엔해군의 해상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프랑스 육군파병은 해군보다 한 달 후인 8월 25일 결정됐다. 그 당시 프랑스는 육군파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는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이 열리는 현장. 새벽에 도착해 올려다 본 부산하늘은 온통 구름이었다. 빗속에서 묵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바람은 차가웠고 공기는 축축했다.유엔기념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친 유엔용사들을 깨끗한 하늘 아래서 추모하라는 뜻이라도 되는 양 주변이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부산을 덮고 있던 구름이 조금씩 조각나 행사 직전에는 사이사이로 짙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햇살이 내비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1944년에 베네룩스 동맹을 맺은 세습입헌군주국이었다. 이 두 나라는 일찍이 영세 중립국임을 선언한 국가이기 때문에 지난 100여 년간 군사력을 건설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독일제국은 이들 영세 중립 국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독일제국은 이들 국가를 통해 프랑스로 진격해 들어갔다. 결국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 상황은 이 두 나라를 영세중립국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전쟁이 가져다 준 비극이었다. 결국 이 두 나라는 20세기에 두 번에 걸친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의 침공으로 국토가 유린당하자 1949년
“61년 전 폐허 속에서 결혼해 오늘 곱게 차려입은 당신을 보니 꽃다웠던 우리 젊은 시절이 떠오르며 지나간 60여 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는구려…. 나와 함께 행복한 동행을 해준 인생의 동반자, 나의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소.” 사랑한다는 달콤한 고백을 끝으로 김창도씨(93)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을 마쳤다. 아내는 곁에서 연신 눈가를 훔쳤고, 청중들은 감동한 마음을 우레와 같은 박수로 표현했다.지난 달 10일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열린 6·25참전 호국영웅
지난 21일 국가보훈처와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디엠지(DMZ)통일열차여행은 분단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서의 내 가슴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도라산역에 이르는 구간을 달려 파주시 일대를 돌아본 이번 여행은 한국 분단의 현장을 실감하게 했다. 통일에 대한 비전과 공감대를 확산시킨다는 취지대로 다시 ‘우리의 통일’을 깊이 고민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이번 행사는 ‘국가보훈처장과 함께하는’이라는 슬로건답게 여러 업무로 바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특별히 참여했으며 DMZ통일열차여행 홍보대사 허영주씨, 국가유공자 후손, 나라
제70주년 유엔의날을 기념해 지난 22일 유엔군전사자 유족 20여 명이 부산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최연소 전사자인 고 패트릭 도운트 상병의 7살 아래 여동생인 에일린 필리스 라이언씨도 남편과 함께 오빠의 묘지를 찾았다. 그의 남편 또한 전직 호주 공군출신이다. "우리 오빠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요?"호주 병사 패트릭 도운트 상병 가족의 집에 한 장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그는 겨우 17세였다. 오빠가 집을 떠난 지 2년 만의 비보였다. 라이언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엄하셨던 아버지도 말을 잇지 못
9월 인천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다. 그 날의 하늘도 오늘 같았을까.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친지 꼭 65년이 흘렀다. 65년 전 인천상륙작전의 흔척을 찾다 범우용사촌 회장 이성훈(62)씨를 만났다. 작전 당시 특수공작대 팀장 이철 선생이 그의 아버지다.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에게 절망이 됐을 법도 하건만 ‘다리는 부속품일 뿐’이라는 아버지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 시간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주변에 필요한 존재가 되자는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큰 사고를 당한 아들 앞에서 눈물도 보이지 않던
네덜란드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6·25전쟁을 통해 자유우방국으로서 신뢰를 쌓게 됐고, 히딩크(Guus Hiddink)와 밴플리트를 통해 더욱 돈독해졌다. 네덜란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에서 대한민국을 4강으로 끌어올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네덜란드가 6·25전쟁 때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렀다. 6·25전쟁 때 네덜란드 군이 목숨 바쳐 수호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참전으로부터 50년 후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대표의 감독을 맡아 한국축구를 4강으
지난 17일 서울시 성북구청 바람마당. 6·25전쟁 당시 미아리 고개에서 분투를 벌였던 호국용사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미래세대에 ‘평화와 희망, 그리고 통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미아리고개를 넘어 미래로 통일로’ 행사가 열렸다.행사는 56사단 군악대의 식전 공연으로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 강렬한 가을 햇빛 아래 자리를 지키는 참전용사들을 위로라도 하듯 공연은 흥겹고 포근했다. 식전행사 직후 개회한 행사에서는 극단 ‘사조’가 6·25전쟁 당시 미아리 고개를 넘는 납북포로의 애환을 재연했고, 이후 영상물로 미아리 전투
햇빛이 쨍하지도, 비가 오지도 않는 날씨. 오랜만에 고국에 방문한 이들의 마음이 꼭 그러했을 듯하다.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그리운 고국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선조를 둔 후손들이 오랜만에 모국을 찾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초청된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선조의 흔적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도 잊지 않고 저희를 불러주시니 나라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참석한 유정엽(67)씨가 얘기를 꺼내기 무섭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만큼 이번 모국방문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는
북한의 기습남침에 국제사회는 발끈했다. 김일성의 전쟁도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국제평화에 물을 끼얹은 행위였다. 제2차대전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연합국들은 유엔헌장을 제정하고 유엔(UN)을 창설했다. 북한의 남침은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격이었다. 양국의 신속한 군대파병 결정 배경 유엔에서는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유엔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련 중심의 몇몇 공산국가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지원에 너도나도 앞장섰다. 지구촌의 어느 지역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청소년 104명이 서울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을 가득 메웠다.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밝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벌써 친해진 듯 시종일관 곳곳에서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6·25전쟁 제65주년을 맞아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에 초청된 청소년들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발대식을 마친 뒤 특히 기운차 보이는 한 소녀를 만났다. 미국 국적의 니콜라 케이브(Nicola Cave, 19) 씨. 친구들과 정신없이 대화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열아홉 소녀다. 그는 금방 발대식을 마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영국은 미국과 자유중국(대만) 다음으로 한국을 승인하고, 서울에 공사관을 설치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6·25전쟁 때, 주한영국공사는 홀트(Vyvyan Holt)였다. 그는 1949년 2월 7일부터 공사임무를 수행했다. 홀트 공사는 서울이 함락될 때, 피란을 가지 않고 있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그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피란을 가지 않았다. 영국 외교관의 책임감과 함께 국민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대한민국과 영국과의 공식관계는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朝鮮)과 영국은 수호통상조약을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 그 후 65년. 전쟁의 잔해는 치워졌고 상처도 상당 부분 아물었지만, 분단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정전, 어정쩡한 전쟁의 중단이지만 전쟁의 마무리는 유엔군의 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뤄졌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 피를 흘리고 큰 희생을 감수한 이들 나라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들의 희생과 공헌을 잊을 수 없다. 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참전국들의 역할과 희생, 그 의미를 진단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6•25전쟁과 미국의 신속한 참전 그리고 한미동맹 6&bul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신이 내린 목소리. 소프라노 신영옥 씨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연주자다. 그가 가는 곳에 영혼의 울림이 있고, 사람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음악이 있다. 그가 지난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나라사랑음악회 무대에 섰다.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를 초청해 개최하는 나라사랑음악회에 4년 연속으로 출연한 그의 나라사랑과 국가유공자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그의 특별한 사연을 들어본다. 7일 세종문화회관. 삼삼오오 세종문화회관 로비에 모여든 국가유공자들은 중동독감 메르스 때문에 조금은 걱정스런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