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 42일 동안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가 이어진다.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를 독립의 의지로 환하게 밝혔던 선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국 릴레이가 시작됐다. 이번 릴레이에 국민주자로 참여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3대 가족을 만났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표행사의 하나인 ‘독립의 횃불’ 국민주자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류금희씨(43)다. 부모님인 류재영씨(83), 정금숙씨(71)를 대신해 신청했던 것이 가족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날, 6·25참전유공자 김윤도(88) 어르신 댁 앞에서 김명숙 섬김이(58)를 만났다. 그는 어르신이 애타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어르신은 문이 열리자마자 섬김이를 환한 얼굴로 반기면서 집을 데워놨다며 얼른 들어오라고 재촉하셨다. 김명숙 섬김이가 일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면 성치 않은 무릎에도 불구하고 그가 점처럼 작게 보일 때까지 밖에 나와 배웅을 하신다.김윤도 어르신은 오늘도 새삼스레 연신 김명숙 섬김이 자랑을 늘어놓는다.“전에 양말이 발목을 죄서 힘들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더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묵묵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희생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를 넘어서자마자 닥친 6·25전쟁. 국군과 미군과 유엔군이 전쟁의 주인공이라면, 이들과 함께 혹은 이들을 지원하며 싸운 이름 없는 이들 또한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들 중 하나가 학생신분으로 책을 물리고 총을 들었던 학도의용군이다. 조재섭 국가유공자(86). 그는 진주농림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전쟁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던 학도의용군이
연말연시를 맞은 서울역은 곳곳을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서울역 한켠에는 의열 투쟁의 효시,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자리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우리 근대사의 한복판,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젊은 독립운동 활동가’ 정상규(32) 씨를 만났다. 그는 독립운동가 앱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독립운동가 정보 제공에 열심인 청년이다.장교시절의 여러 활동, 독립운동가 앱 개발 및 보급, 각종 출판물 보급, 활발한 위원회 활동, 제법 연륜이 쌓인 활동내역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앳된 얼굴이다.햇살이
동지를 며칠 앞둔 햇빛 가득한 오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을 사이에 두고 대화중인 신대순 어르신(91) 댁에 들어섰다.“날이 추워서 조금 일찍 준비해 봤지요. 호호.” 홀로 계시는 어르신을 위해 동지 팥죽까지 챙기는 마음 따뜻한 권춘희 섬김이다.섬김이로 활동한지 이제 5년째로 접어든다는 권 섬김이는 ‘초보 섬김이’답지 않게 어르신과 대화도 어색하지 않고, 필요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척척 챙겼다. 알고 보니 그는 지역, 재향군인회, 임시보호소, 복지관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 온 지 20년 가까이 됐다고.“제일 처음으로 나간 곳은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 충주 맹기호 어르신 댁에서 그를 만났다.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바깥과 달리 정으로 훈훈한 어르신 댁에서는 지난번에 끓여두고 간 된장국에 왜 라면 국물을 부으셨냐는 잔소리가 비집고 나온다. 잔소리가 아주 성가시다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의 어르신과 달리 신용자 섬김이는 어르신의 섭생이 특히 마뜩치 않은 눈치다. “잘 왔어요. 지금 신 선생이 한바탕 나를 타박 중이라오. 허허.”애써 된장국을 끓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서가 아니라, 자주 라면을 끓이시는 어르신의 건강이 염려된 딸 같은 섬김이의 속 깊은 잔소
단풍이 한창 곱게 물들었다. 보도블록 위엔 낙엽이 수도 없이 뒹굴고 있다. 11월의 중앙보훈병원 모습이다. 호스피스병동.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정리하며 가족과 이웃과 작별하는 의식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국가유공자들의 인생의 마무리를 돕는 권인자 자원봉사자(64)를 만났다. 환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따뜻한 미소만을 기억하리시라는 듯.“여기 오시는 분들은 어쩌면 모든 ‘마지막’을 경험하시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각종 단체에서 나와 이발 봉
“우리 이 여사가 신문에 나온다니 내 맘이 참 좋습니다. 우리 이 여사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사람인지 몰라요.”벼가 노랗게 익은 논 초입에 자리 잡은 빨간 벽돌집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아흔 살을 바라보고 있는 6·25참전유공자 안진목 어르신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참 고마운 사람’이라며 칭찬에 바쁘다. 어르신의 칭찬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함박웃음으로 집안을 정돈하던 경기동부보훈지청 이정남 섬김이를 만났다. 섬김이 삼수생…늦어도 ‘모범활동’이 섬김이는 삼수생이다. 섬
10월초 가을이 한껏 깊어가는 빛고을 광주, 화사하게 단장된 웨딩홀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평일이지만 오늘 10쌍의 합동결혼식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곳곳에 놓인 가을꽃들과 행사를 돕는 관계자들의 발길이 점점 바빠진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결혼 60년을 맞아 ‘회혼식’을 치르는 광주 전남지역 국가유공자들이다. 60년을 잘 살아온 부부가 행복한 노후를 확인하는 날이다. 그리고 광주지방보훈청과 전우들이 뜨거운 축하를 보내는 자리다. 오늘따라 신랑 국가유공자 최장길 님(85)과 신부 김종금 님(82)이 긴장을 하셨다. 조금은 쑥스럽지만 그보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강릉. 솔향 가득한 도시답게 깨끗하게 정리된 거리를 달리다 강릉 올림픽 파크 인근 조용한 주택가에 닿았다.도시가 널찍이 내려다 보이는 2층 참전유공자 최승기 어르신(85) 댁. 오늘은 이곳을 김수정 복지사(45)와 손옥분 보훈섬김이(57)가 함께 찾았다. 환한 미소로 일행을 맞이하는 최승기 어르신은 오랜만에 만난 딸을 보듯 환한 표정에 반가움을 듬뿍 담아 손님을 안내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어르신은 요즘 불편한 몸과 병원에 다녀왔던 이야기에서부터 군대시절의 경험까지 구성지게 얘기를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가을은 여름을 밀어내기 마련이다. 파란 하늘과 오색 노을이 빛나는 가을, 67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노병의 눈길이 상전벽해 서울을 바라본다.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행사에 맞춰 가을이라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방문한 미국 참전용사 랄프 가스텔럼(87) 씨다. “아주 아름답게 재건된 이곳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메이징(놀라워요)!”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다시 방문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후덕한 인상에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그는 미 해병 1사단 소속 병장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장진호전투, 흥남철수작
그야말로 푹푹 찌는 여름날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뚝뚝 떨어지는 날씨, 서울시 용산구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송태훈 어르신(87)과 서울지방보훈청 소속 최해숙 섬김이(56)가 자식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고 있다.“말이 통해서 참 좋고,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니 이보다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어요. 내가 아는 최 여사는 경우가 밝고 다정하고 그리고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거든. 최 여사가 오면 혼자 사는 집이 밝아져서 아주 좋아.” 그는 고향 순창에서 지역 치안을 담당하던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기 전까진
빛고을 광주, 100여 년 전 미국선교사가 대한민국의 미래교육을 내다보며 세운 광주수피아여중. 광주 양림동의 근대문화유산 중 하나인 이 학교는 지난해 나라사랑 창의체험학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나라사랑 관련 학습을 통해 교과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창의교육과 전인교육의 장을 활짝 열었다. 창의체험학교 우수학교로 선정된 이 학교의 프로그램을 맡이 이끈 담당교사들을 만났다.한여름을 넘어서는 광주수피아여중(교장 박현숙) 교정은 짙은 녹색에 살짝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으로 가득 찼다. 여중·여고 공동정문 앞의 ‘광주3·1만세운동 기념동상’(당시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구수하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바람 솔솔 불어오는 창가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열여덟 살 적 6·25전쟁 이야기를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풀어내고 있다. 청중은 딱 한 사람이다. 얼핏 시아버지와 며느리인가 싶은 이 두 사람은 구순이 넘은 황수갑(92) 어르신과 환갑을 넘긴 이소윤 보훈 섬김이다.보훈섬김이 제도가 틀을 잡고 정착하기 전부터 국가유공자 어르신들 곁에서 그들을 돌봤던 이소윤 섬김이는 올해 64세 정년을 앞두고 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나이가 먹는 줄도 몰랐다며
“지난 6월 26일 부산에서 열린 유엔참전용사 추모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 안에 추모의 벽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말씀하신 내용을 전해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지난 6월 29일 이병희(사진, 87, 6·25참전국가유공자) 미국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대외이사가 추모의 벽설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보훈처를 찾았다.“추모의 벽 건립은 6·25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3만7,000여명의 이름을 새겨 넣는 역사적인 작업입니다. 미국 내 참전용사단체인 한국전참전용
대한민국 해병대의 신화는 낙동강 전선의 진동리 전투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성은 중령이 지휘하던 한국 해병대는 진주를 점령한 후 마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6사단을 진동리 일대에서 격전을 통해 저지했다.그 전공으로 국방부는 부대장 김성은 중령을 포함해 전 부대원을 일계급 특진시켰다. 6·25전쟁 발발 이후부터 진동리 전투까지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망라해 전군에서 부대장을 포함해 전 부대가 일계급 특진한 사례는 단 세 번 뿐이었다. 1950년 7월 초순 6사단 7연대가 충청북도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 1개 연대를 격
참혹한 전장, 그 속에서 조용히 빛을 발한 달빛 같은 소녀의 이름 ‘아일라’.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개봉한 터키 영화 아일라는 터키어로 ‘달’이라는 뜻이다. 전쟁고아로 유엔 참전용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 달빛 아이, 터키 병사들이 붙여준 소녀의 ‘정확한 이름’인 셈이다. 아일라의 실제 주인공 김은자 씨(73)를 만났다. 인천 주안역 인근에서 만난 그는 며칠 전 극장에서 만났던 영화의 감동과 함께 주인공들의 분위기와 향기가 실제로 묻어났다.이날따라 서늘한 바람이 갈 길 바쁜 사람들을 위로하듯 불어오고 있었다.주안역 인근 관공서
대전 중심부 서쪽을 나지막이 감싸안은 도솔산 아래 한 대학교와 이어진 아파트. 조금 오랜 듯 하지만 깨끗한 외관이 마음을 편안하는 곳이다. 한여름을 향해 달리는 이곳에서 월남전 참전유공자 고인기 어르신(84) 댁에 강정아(48) 보훈섬김이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도 어르신의 표정은 그지없이 밝다.“딸도 여럿이고, 대전에 사는 딸도 있지만 이렇게 가깝게 나를 도와주고 함께하는 강 선생이 있어 행복하죠. 자연스럽게 강 선생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밝은 얼굴로 얘기 들어주고 함께 얘기하고&
6·25전쟁은 바다에 의존한 ‘해군전쟁(naval war)’이었다. 그것은 전쟁기간 내내 대한민국에 들어온 군수물자의 99.6%가 바다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것도 전쟁 초기 해군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당시 해군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전쟁을 수행하기도 전에 극도의 혼란에 빠지거나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 당일부터 북한이 노렸던 부산과 관계가 있었다. 부산은 대한민국 최대의 항구도시로 전쟁을 수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전략적 항구였다.
1950년 겨울, 교복을 벗어 두고 어색하고 묵직한 군복으로 갈아입는 소년들이 있었다. 소맷자락이 손을 덮을 만큼 길게 내려오고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허리띠는 볼품없이 졸라맸다. 부드러운 뺨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학생들은 조국을 지키려고, 북한군에 잡히지 않으려고 굳은살도 박이지 않은 손에 자기 키만한 총을 들고 부산으로 갈 채비를 했다. 하나 둘 ‘축현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200여 명의 학생들 속에 이경종 군이 있었다.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 힘든 걸음을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